1월 1일 방송된 TV조선 ‘인생다큐 마이웨이’에서는 80년대 국민여동생 ‘그대여’ ‘바야야’ 가수 이정희가 출연했다.
30년 만에 돌아온 가수 이정희는 미국으로 간 이유에 대해 스폰서 제안을 언급하며 “감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은 안 하고 살았다. 그런 거 안 하고 살려니 너무 힘들었다. 그래서 미국으로 갔다. 3단계로 말할 수 있다”고 말했답니다.
이어 이정희는 “비밀파티라든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제의가 계속 있었다”며 “백지수표를 내 앞에 놔둔 적은 없다. 통해서 이야기 한 적은 있었다.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제의를 많이 받았다”고 밝혔다.
이정희는 “여기서 정말로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타협했을 지도 모른다. 워낙 이겨내기 힘든 세태였기 때문에 타협하고 저에게 정당화시켰을지 모른다”며 “나만 바보같이 이겨내지 못하고 간 거다.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순진했나 싶기도 하다. 미국 가서 공부하고 편안하게 보통사람으로 살아야지, 내 자신을 못 견디겠더라”고 말했다.
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미국에서도 모든 일이 순탄하지는 않았다고. 이정희는 “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. 피해서 간 거다. 현실도피인 거다. 내가 돈이 어디 있냐. 애아빠는 돈이 있고 날 따뜻하게 해주고 나 좋다고 하니까 결혼하자. 잘못된 판단이었다”고 결혼을 회상했다.
이정희는 “10년 차이가 났고 정말로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다. 모든 게 안 맞았다. 사랑의 힘이 없으니까 더 힘들더라 결혼이”라며 “인생 살면서 제일 잘못한 건 그 사람과 결혼한 것, 제일 잘한 건 그 사람과 이혼한 것이다”고 말했다. 이정희는 아이들 위해 10년을 버티며 살다가 이혼했답니다.
이정희는 “여기서 끝을 내야겠다. 애들 맡을 테니 헤어져 줘라, 자기도 잘못한 게 있어서 이혼하게 됐다. 아무 조건 없이. 내가 아이들 맡고 위자료 양육비 안 받는 조건으로 이혼했다.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로 해서.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나 싶다. 돈도 많이 벌었고 사기도 당했다”고 과거를 떠올렸다.
이정희는 “장사했는데 장사할 물건이 싸게 나올 수 있다고 해서 투자를 했던 것이다. 결국 (물건이) 오지도 않고 사람에게 속은 거였다. 벌어놓은 전부였다. 액수는 100만불(11억 원) 가까이 됐다. 그 때 생각하면 어떻게 이겨냈지 싶다. 애 둘 키우는 건 전투였고 치열한 삶이었다. 이제 애들도 엄마 인생 살라고 응원해준다”고 밝혔습니다.
그런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. 이정희는 “갈 때보다 정말로 올 때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. 비행기에서 계속 울면서 왔다. 여기에 대한 걱정보다는 거기 두고 오는 아들 엄마 딸 생각에 눈물이 났다. 만감이 교차했다. 그랬는데 내리는 순간 내가 힘을 내야 우리 식구가 내가 산다, 씩씩하게 내렸다”고 말해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게 했답니다.
이정희, 가수 철저히 숨기고 미국 이름 사용한 이유는? -2016. 7. 19
이정희가 미국서 패션 사업을 할 당시 가수 이정희라는 사실을 숨기고 미국 이름을 사용한 이유를 밝혔답니다.
이정희는 19일 오전 방송한 KBS1 '아침마당'의 '화요초대석' 코너에 출연했다.
이정희는 "처음에 바잉 오피스 일을 시작했다. 그렇게 지내다 패션에 눈을 뜨게 돼 패션 블로그도 만들고 일을 하게 됐다"고 말문을 열었답니다.
그는 "가수 이정희라는 이름을 밝히면 전문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 이정희라는 이름을 철저히 숨기고 미국 이름을 사용했다"며 "패션 사업을 하다보니까 '내가 하니까 정말로 잘 되네'라는 자만심이 생겨 투자를 했다 가짜 물건을 받고 큰 타격을 받았다"고 사연을 전했다.